구술채록

김국진 Kim Kuk Jin, 金國鎭

기본정보

출생년도
1930년
활동분야
공연예술 - 음악 - 작곡
채록연구자
이주애, 이경미
시리즈번호
293

구술자료


주요 약력

1. 인적사항

 ∙ 성           명 | 김국진(金國鎭, Kim Kuk Jin)

 ∙ 생 년   월 일 | 1930년 4월 24일

  

2. 수련과정 

 ∙ 1946    평양음악학교 학생인 사촌에게 비정규적으로 음악수업 받음

                   일본어판 화성학을 독학으로 터득함 

 ∙ 1949    평양성화신학교(예비과 2년, 본과 3년 과정) 졸업

 ∙ 1954    독일계 미국작곡가 말스베리(D. Malsbary)에게 피아노, 화성학, 대위법, 작곡법, 관현악법을 5년간 사사

  

3. 일반 / 수상경력

1) 일반

 ∙ 1955~1963    부산평화중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 1980~1984    영남신학교 강의

 ∙ 1977~1985    장로회부산신학교 강의

 ∙ 1985                  영락교회 강의

 ∙ 1968~1972    부산교회음악협회장 역임

 ∙ 1970~1982     한국작곡가회 이사 역임

 ∙ 1973~2008    한국음악지도협회 연수원 강의

 ∙ 2009~현재      작곡 및 강의

  

2) 수상

 ∙ 1962년   제2회 동아음악콩쿠르 입선 <목관 5중주 op.4>

 ∙ 1963년   제3회 동아음악콩쿠르 입선 <관현악서곡 op.5 “밤과 낮”>

 ∙ 1964년   제1회 5.16신인예술상 수상 <피아노 5중주 op.2 >

 ∙ 2000년   올해의 작곡가상(전국평론가협회 주최)

 ∙ 2015년   부산문화상 수상(공연예술부문)

 

4. 활동경력 

1) 대표작품 목록(채록문 211쪽 ‘05. 김국진 작품집 목록’ 참조)

  

2) 구술자 관련 주요 예술사적 사건

  □ 한국음악지도협회 창립

   1975년도에 한국음악기능지도자협회(서울소재)의 부산지회로 시작하였다가 80년도 초반에 김국진의 아내 김복줄씨가 이사장을 맡게 되며 한국음악지도협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1984년도에는 김국진이 이사장으로 추대되고 한국음악지도협회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져 갔다. 울산, 마산, 창원, 진해, 삼천포, 김해 등에 지회가 세워져 그곳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마산, 창원에서는 정영숙 (전)경남지회장의 역량으로 ‘한얼음악경연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얼음악경연대회’는 1년에 한 차례씩 개최하여 2017년까지 47회를 치렀다.) 

     이 대회의 지정곡들은 대부분 김국진의 창작곡들이고 30회 이후에는 한국음악지도협회 회원들의 작품도 채택되고 있다.

    70년대 말 부산본부에서도 ‘전국 새 음악경연대회’를 협회의 사업으로 개최하여 10여 년간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협회의 주요 활동은 연수원에서의 요일별 다른 주제의 

     수업과 작곡, 지회에서의 교육들이다. 효과적인 교육의 여파로 지역 회원들의 음악학원 원생들이 다양한 콩쿠르에서 상위권을 휩쓸게 되고 이로 인해 회원들이 증가하였다

      지금까지 활동하는 회원들로는 경남지회에는 정영숙, 변경희, 마산지회는 주영라, 차옥자, 김보국, 이승희, 김정희, 이경옥, 이혜련, 윤혜림 등이다

     창원지회는 안성숙, 박성희, 안영숙 등이며, 이들은 한얼음악경연대회 뿐 만 아니라 ‘한국의 소리의 밤’(23회, 마산지회 활동)과 세미나(45회) ‘한국의 얼, 할머니, 할아버지 손잡고

     동요 부르기 대회’ 등 금년 6월에 4회(경남지회 주최)를 개최하였다. 울산지회는 변태미, 김수정, 문현애, 김해지회는 김종덕, 한미수, 이진옥, 이진영, 부산본부에는 임동현, 엄판생

    김봉환, 전금숙, 김승희, 류선희, 김강예, 최수남, 김경람, 김성광, 민진숙, 이주애 등이며 서울은 김성희, 대구에서는 육수근이 활동하고 있다.

  

 경연대회에서 김국진 작곡가의 작품이 지정곡이 되어 나타난 현상 : 김국진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이 각종 경연대회에서 외면을 당하며 창작활동의 의지를 꺾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났지만 작곡가는 묵묵히 작품에 전념해왔다. 그 예로써 다음의 사건들이다.

- 신아일보 주최 음악경연대회에 김국진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고 그의 작품인 소나티네가 지정곡이었을 당시 “김국진이가 누구냐?, 이 곡을 검증받았느냐?, 누구 빽으로 채택되었나?” 

    라는 항의가 쏟아져 김국진 작곡가는 매우 곤란을 당하였다.

- 부산음악교육협회 경연대회 때도 김국진의 피아노곡을 지정곡으로 출연시키자하니 조ㅇㅇ(전 부산대교수, 현 작곡가로 활동)씨가 매우 반대하였고 부산 작곡가들도 대부분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하였다.

- ‘월간음악경연대회’(1984년 즈음)에 금수현 작곡가가 콩쿠르 예선 곡으로 김국진 작곡가의 곡을 지정곡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니 정진우(전 서울대교수)씨가 “곡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김국진씨 혼자 심사해야 되겠네.”라고 하여 금수현 작곡가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자”하며 무산되기도 하였다.

- 지정곡의 대부분이 김국진 작곡가의 곡이었던 경남한얼경연대회 초창기 참가자들은 “왜 김국진 곡만 하느냐?”고 물어왔다. 이에 대해 당시 정영숙 전 경남지회장이 “그러면 당신들 

    곡도 가져오라”고 대응하여 위기를 모면하였고, 1회부터 30회까지 김국진의 곡으로만 한얼음악경연대회를 치렀다.

- 70년대 말부터 약 10년간 한국음악지도협회내 사업이었던 ‘전국 새 음악경연대회’를 할 당시 “검증 안 된 한국 곡(김국진곡)을 지정곡으로 하고 있다”는 고발내용으로 

    부산서부경찰서에 고발장이 접수되었다. 당시 담당 경찰인 김동진씨는 “자기 곡을 자기 콩쿠르에 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자기 곡을 자기가 선전해야지 누가 선전해 주냐? 

      고발자가 누구냐?”며  “관등성명 대라.” 하였으나 당시는 경찰의 권세가 큰 시대라 사건이 더 커지지 않게 김국진은 덮고 넘어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신문에 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김국진은 엉뚱한 곳에서 피해를 입었다. 그즈음 김국진 작곡가는 KBS어린이 노래자랑(책임자 황하주)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었는데 신문에 난 고발장 사건으로 위촉된 심사위원 자리에서 제명을 당하였다. 고발한 사람들은 부산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 작품의 발표는 제2의 작업과정이다. : 김국진의 작품이 연주자에 의해 발표되고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작품을 구상하고 오선지 위에 올리는 작업과 버금가는 노고가 따랐다.

      김국진이 학계에 있었다면 연주자들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다. 김국진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한국적 작품으로서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기에 그에게 있어 연주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연주자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특히 그의 곡을 암보로 연주하는 연주인을 만나게 되면 무대에 그를 세우기를 즐겨하였다.

 - 1975년 피아노 3중주를 발표하려 하였으나 피아니스트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음악이라며 피아노 연주를 거부하여 다른 작품으로 대체하여 연주되었다.

 - 오페라 《물레방아 도는데》를 작곡하여 부산에 있는 김석형씨(‘메소드’음악기획사 운영. ‘물레방아 도는데’ 오페라 작품을 구술자로부터 받아갈 그즈음에는 구술자의 댁에 오는 것을 

     좋아하여 자주 방문했고 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였으며 형편이 어려움을 듣고 구술자가 “이 작품을 네게 줄 터이니 알아서 하라” 하였고 이 작품의 양이 많아 한 짐 지고 

     갔다고 함)에게 작품을 맡기며 서울의 문화재단에 기금을 의뢰하게 되었을 때 ‘죽음을 미화하였다’며 채택되지 못하였다.이후 오페라를 썼다간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고 여러 사람만 

     곤란하게  하겠다며 당시 쓰던 작품 《황진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등을 미완성인 채로 두고 오페라를 쓰지 않게 된다.

 - 고정화(부산교육대학 명예교수, 한국피아노학회 고문, 부산피아노연주가클럽 고문, 사)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수석 부회장, 현 부산음악협회 회장)씨는 김국진 작곡가의 

     피아노곡들을 암보로 연주하는 드문 연주인이다. (창작곡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이 통례다) 고씨는 김국진의 <파랑새를 주제로 한 변주곡>(작품42)과 <승무>(작품311), 

     김국진의 <아리랑>, <소나타 작품 58>, 피아노를 위한 산 <비나리> 등도 암보하여 연주하였다. 또 김국진은 가곡 발표회 때마다 암보로 가곡을 부른 신용희(전 가톨릭대학교 

     외래교수, 현재 미국에 거주함) 성악가에게도 자주 연주를 부탁했다.

 - 1967년 김국진 작곡가의 작품발표회에서 <기타 3중주>의 바이올린 부분을 맡아 연주했었던 김호연(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졸, 미국서 사망)은 “동아콘테스트에서 입선한 사람이 

     왜 부산에 있느냐?”라고 하며 안타까워하였다. 그는 김국진의 작품 <플룻과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주>의 원 악보를 선물로 달라며 앞으로 귀중품이 될 것이니 자식들에게 

     상속하여 가보로 보관해야겠다고 가져가기도 했다.

 - 부산음악협회의 주도로 재부작곡가의 창작 작품 연주회를 열기로 하였으나 (고)이상근씨만 실내악(20분 정도)을 제출하였다. 작품을 제출하는 재부작곡가의 작품이 한 곡 밖에 없자 

     서울 김동진 작곡가의 곡을 청하고(관현악서곡 약10분) 부랴부랴 김국진 작곡가에게 혹시 곡이 있는지 찾아왔는데, 그 자리에서 <교향곡 2번>(40분 소요)을 내 주었다.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상근 작곡가는 “마지막 곡으로 김국진 곡을 연주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며 말을 흘렸다. 1979년 10월 15일 부산 시민회관 제2회 무대예술제 

     부산시립교향악단(이기홍 지휘)의 연주로 창작곡 발표회가 열렸다.

 - 박찬석 작곡가는 김국진 작곡가의 출판기념회(부산 청소년 반공회관)에 참석하여 청소년들이 김국진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치는 것을 듣고는 “슈베르트의 영혼이 살아났나

     모차르트의 영혼이 살아났나!” 했다.

  

 □ 2010년 9월 11일 부산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 ‘국제마루음악제’참여 : 김국진의 <현악합주곡 제2번 ‘청사포’>가 강동석이 이끄는 ‘서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에 의하여 연주되었다.

  

 □ 외국에서 인정받는 한국 곡 :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 과정에 또는 외국인의 음악회에서 우리나라를 알릴 필요에 의해 한국적인 작품을 찾으며 김국진에게 의뢰한 

    일은 종종 있었다.

 - 1985년 New York University 학생이었던 차희라씨가 철학박사 학위 청구논문의 진행 과정에서 그의 담당 교수가 한국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요구하게 되자 

     서울대 출신(피아노전공)인 차씨는 소설가 어머니인 김재영씨에게 곡을 부탁하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서울대로부터 한국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구해 보내 주었으나 미국인 교수는 

     곡을 보다가 “이것이 어떻게 너의 나라 곡이냐?” 하며 거부당하게 되었다. 이후 사방팔방으로 한국 곡을 찾던 중 월간음악으로부터 『김국진의 피아노 변주곡집』 을 구하게 되어 

     딸에게 보내주게 되고 그의 교수는  그 작품을 보고 난 후에야 인정하였다

     당시 그 학위를 받기 위해 아시아인 7명이 준비 중이었는데 자기 나라 곡이라고 인정받았던 차씨만 통과되었다.

 - 위의 내용을 듣게 된 월간음악잡지 『객석』의 이인해 편집차장은 부산에 내려가서 김국진을 만나 1박을 하면서 취재하여 1986년 1월호에 ‘만나고 싶었습니다’ 라는 코너에 취재 

      내용을 싣기도 하였다.

  

□ 1988년 12월22일-23일

   - 부산 문화회관

   - 부산오페라소극장 제3회 정기공연 / 부산시민오페라단 제2회 정기공연에 의한

   - 오페라 《사감과 러브레터》 발표 

  

5. 구술자 저작물 (단행본/논문/전시도록/ 신문·잡지 기고 등)

 단행본 

 ∙ 오라토리오, 『평강의 왕이 오셨네』 재순악보출판사, 1982

 ∙ 오라토리오, 『다윗의 감사기도』 도서출판해광, 1985

 ∙ 칸타타, 『평강의 왕』 도서출판해광, 1984

 ∙ 칸타타, 『승리의 십자가』 도서출판해광, 1986

 ∙ 칸타타, 『사랑의 왕 예수』 도서출판해광, 1986

 ∙ 칸타타, 『오 기뻐하라! 구세주가 오셨다』 도서출판해광, 1991

 ∙ 칸타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도서출판해광, 1992

 ∙ 칸타타, 『마리아의 애가 (7곡)』 도서출판해광, 1992

 ∙ 칸타타,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일곱 말씀』 도서출판해광, 1993

 ∙ 칸타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도서출판해광, 1993

 ∙ 칸타타,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동진음악출판사, 1995

 ∙ 칸타타, 『3,1절 노래(강대식 시에 의한)』 동진음악출판사, 1996

 ∙ 칸타타, 『보라 너희들의 왕이라』 이우음악사, 2003

 ∙ 칸타타집, 『영원한 약속(이상윤 시를 주제로 한)』 부산대인쇄사, 1996

 ∙ 칸타타집, 『마지막 수난(이상윤 시를 주제로 한 7곡)』 부산대인쇄사, 1996

 ∙ 가곡집, 『탐라기행가』 문학광장, 2014 

 ∙ 가곡집, 『예술가곡집』 고려문예출판사, 1978

 ∙ 가곡집, 『김국진 가곡집Ⅱ 강강수월래』 세광음악출판사, 1985

 ∙ 가곡집, 『등꽃음악축제』 부산대인쇄사, 2002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1집』 교회음악연구회, 1986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2집』 정문인쇄사, 1988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3집』 정문인쇄사, 1990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4집』 정문인쇄사, 1991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5집』 정문인쇄사, 1994

 ∙ 합창곡집, 『한국성가곡집 제6집』 동진음악출판사, 1995

 ∙ 합창곡집, 『새한국 합창곡 모음』 해광출판사, 1998

 ∙ 찬송가, 『101찬송가 모음Ⅰ』 정문인쇄사, 1990

 ∙ 찬송가, 『203찬송가 모음Ⅱ』 정문인쇄사, 1991

 ∙ 찬송가, 『306찬송가 모음Ⅲ』 정문인쇄사, 1993

 ∙ 찬송가, 『408-510찬송가 모음Ⅴ』 정문인쇄사, 1998

 ∙ 찬송가, 『544-627찬송가 모음Ⅵ』 정문인쇄사, 1999

 ∙ 피아노출판물, 『한국선율에 의한 소품집』 유니온악보사, 1971 

 ∙ 피아노출판물, 『김국진피아노 소나티네 앨범』 아성출판사, 1974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 변주곡집』 고려문예사, 1976 

 ∙ 피아노출판물, 『우리 어린이 피아노 소곡집』 고려문예사, 1976 

 ∙ 피아노출판물, 『새로운 피아노 소나티네(2집)』 고려문예사, 1978

 ∙ 피아노출판물, 『우리 어린이 피아노 소곡집 2집』 고려문예사, 1979

 ∙ 피아노출판물, 『한국피아노 작곡집』 복지출판사, 1981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모음』 세광음악출판사, 1983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소리 모음Ⅱ』 해광출판사, 1991 

 ∙ 피아노출판물, 『한국피아노 소나티네Ⅰ』 정문출판사, 1994 

 ∙ 피아노출판물, 『음악의 꿈나무 피아노 소곡집』 동진음악사, 1996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를 위한 담시곡』 동진음악사, 1996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를 위한 산 ‘비나리’』 부산대인쇄사, 1994 

 ∙ 피아노출판물, 『피아노를 위한 산조Ⅵ』 부산대인쇄사, 1994 

 ∙ 피아노출판물, 『Ballade for piano solo ‘화두’』 부산대인쇄사, 1994 

 ∙ 피아노출판물, 『네개의 손을 위한 한국의 소리(피아노 연탄곡 1집)』 동진음악사, 1996 

 ∙ 피아노출판물, 『네개의 손을 위한 한국의 소리(피아노 연탄곡 2집)』 동진음악사, 1997

 ∙ 피아노출판물, 『김국진 피아노 산조(제1집)』 포도나무기획, 2016

 ∙ 피아노출판물, 『김국진 피아노 산조(제2집)』 포도나무기획, 2016

 ∙ 피아노출판물, 『한국피아노 소나티네Ⅲ』 동진기획, 2006 

 ∙ 소품집, 『김국진 9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품』 해광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