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출생년도
- 1937년
- 활동분야
- 대중예술 - 대중예술 - 연출
- 채록연구자
- 백미숙
- 시리즈번호
- 308
구술자료
주요 약력
1. 인적사항
∙ 성 명 | 황정태 (黃正泰/ Hwang Jung Tai)
∙ 생 년 월 일 | 1937년 3월 3일
2. 수련과정
∙ 1955.2 부산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55.3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치외교학과 입학
∙ 1959.2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 1959.7~1960.12 육군 복무 및 제대
∙ 1979.2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매스컴 전공 석사
3. 일반/수상경력
1) 일반
∙ 1961.08 국영 KBS TV방송요원 공채1기. TV 개국 준비
∙ 1961.12 KBS TV 편성, 제작부 프로듀서.
∙ 1964.10 TBC TV 개국준비요원 프로듀서
∙ 1965.12 TBC TV 제작2부 차장
∙ 1969.03 TBC TV 제작부장, 편성부국장, 제작주간
∙ 1976.09 TBC TV 편성국장
∙ 1979.03 TBC TV 제작국장 (이사대우)
∙ 1981.2.4. ㈜신세계백화점 이사, 영업2본부장
∙ 1983.01 중앙일보 문화사업담당 이사
∙ 1988.07 ㈜제일기획 상임고문
∙ 1993.3.31. KBS제작단 상임감사
∙ 1997.05 KBS시설관리사업단 고문
∙ 1998.03 KBS시청자위원회 위원(2회 연임)
∙ 2000.05~2003. 제5대 KBS이사회 이사 선임 (한나라당 추천)
2) 수상
∙ 1970.10.02. 문화공보부장관 표창 (제7회 방송의 날)
∙ 1977.02.16. 문화공보부장관 표창 (제14회 방송의 날)
∙ 1979.12.28. 새마을지도자 대통령 표창 (새마을방송)
4. 활동경력
1) 대표 방송 프로그램
∙ 1962.2~1964.9 < KBS그랜드쇼>(1962.9 첫 방송)
<제스추어게임>(1962.1.16. 첫 방송)
<나의 비밀>(1962.1.5. 첫 방송한 <나는 비밀이 있다> 제목 변경)
∙ 1964.12.12.~75.1.25 TBC TV <쇼쇼쇼> 500회 연출
∙ 1978.12.9. TBC TV <쇼쇼쇼> 700회 해외특집 제작 방송
최초 해외로케 쇼프로그램
∙ 1978.9.30.~10.1 중앙매스컴 창립13주년 기념대공연 세종문화회관
패티킴 리사이틀 <서울의 연가> 기획
∙ 1979.12.9. 제1회 세계가요제> 기획 및 연출
2) 기타 연도별 구술자 활동경력
∙ 1970.9~11 일본 NTV 방송 연수
∙ 1971.8~11 영국 외무청 초청 BBC 연수
∙ 2001.1~02.10 2002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자문위원
∙ 2002.09 남북 교향악단 교환행사, 평양 방문
∙ 2003~2004 방송위원회 연예오락 제1심의위원회 위원장
∙ 2003~2007 경희대, 세종대, 한세대, 추계 예술대학 등 출강
∙ 2013~2014 jtbc 초대 시청자위원
5. 구술자 저작물
단행본
∙ 2001. KBS, TBC-TV 개국, 그리고 쇼쇼쇼, 『한국의 방송인: 체험적 현장기록 한국방송 1965~2001』, 한국TV방송50년위원회편,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446~457.
∙ 2004. 『디지털 혁명 TV방송을 변화시킨다』, 중앙M&B 삼성언론재단 저술총서.
논문
∙ 1979. <일본 TV방송이 한국 TV 방송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정간물 및 일간지 기사
∙ 2004. 방송심의 현황: 연예오락, 『방송심의』, 방송위원회.
6. 구술자 관련 주요 예술사적 사건
국영KBS 공채 1기 ‘TV방송요원’으로 쇼프로그램 제작 경력 시작
∙ 1961.11~1964.10. KBS ‘TV요원’(프로듀서)으로 재직 기간 동안 주로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함. 입사 초기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조하는 플로어
매니저(Floor Manager) 역할을 하다가 곧 <제스추어 게임>, <나는 비밀이 있다> 등의 기획, 연출을 담당. 곧이어 1962년 9월부터는 구술자의 대표 장르가
되는 버라이어티쇼 < KBS 그랜드쇼> 연출을 시작하여 1964년 10월 이직 전까지 제작을 담당함.
∙ 1961.11. KBS 입사. 구술자는 최초의 국영TV 방송국 1기 ‘TV방송요원’ 공채에 응모하여 TV개국 준비 과정에서 제작 교육을 받음. 공보부는 1961년 8월
14일 국영TV방송국 설립 준비계획을 세웠고, KBS는 이로부터 100일이 채 되지 않은 12월 31일 지붕도 완성되지 않은 스튜디오에서 개국방송을 함.
∙ 공보부는 방송관리국 아래 ‘KBS-TV 프로덕션 준비실’을 설치했고 10월 10일에는 남산 부지에 텔레비전 스튜디오 신축공사를 착공. 처음 중앙청 내에 자리
잡았던 프로덕션 준비실은 곧 서울중앙방송국의 스카이라운지로 이동. 기획 연출요원’들을 양성하기 위해 10월 23일부터 준비요원 10여명이 자체학습을 위한
세미나를 개시. "준비실에 모인 요원들은 최덕수, 이기하, 황재목, 유인목, 이평재 등 HLKZ-TV에서 2년 이상 프로덕션의 경험을 가졌던 스태프와 정일몽 등
미국에서 텔레비전 코스를 공부한 젊은 사람들. 이들은 오전 중에는 세미나를 통해 자신이 터득한 프로덕션 테크닉을 재확인 정리하면서 오후에는 프로그램
포맷 연구와 방송 자료 수집, 각종 디자인 등 준비 작업에 분망함.
∙ 주요 교재로는 Rudy Bretz의 Techniques of Television Production(1953)을 번역한 원고지 1500매 길이의 텍스트를 사용. 제작 인원으로는 기획, 영화,
연극, 무대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보완되었고 이어서 공보부에서 모집한 신규 ‘요원’이 배속됨. 이후 라디오에서 선발한 인원이 합류했고, 공보부 산하
국립영화제작소의 카메라 인력도 일부 참여함(한국방송공사, 1977, 『한국방송사』pp. 529~530).
∙ 국영TV 개국 책임자는 한국 최초 민간TV방송국 HLKZ-TV 방송부장을 역임한 최창봉. 연극 연출자였던 최창봉은 미국 RCA가 출자한 HLKZ-TV에서 미국
기술자로부터 텔레비전 연출과 제작 기술을 습득했고, 1957년 미국무성 초청 6개월 연수과정에서 1950년대 생방송 텔레비전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미국
TV 네트워크 제작현장을 방문하여 미국식 프로듀서시스템을 직접 경험하고 제작 교육을 받음. 최창봉은 당대 한국 텔레비전 방송 경험의 전부이자 그 자체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음.
∙ 최창봉은 공채를 통해 선발한 TV요원을 한국 최초의 TV피디 전문 인력으로 키우고자 했으나 개국 후 공보부는 직제개정(1962.2.5)을 통해 군악대 정훈
장교 출신 황기오를 초대국장으로 임명했고 최창봉은 곧 사직하게 됨, 촉탁신분이던 공채요원들은 입사 후 2-3개월 사이에 사내시험을 통해 정식 공무원이
되었고, 곧 국영 TV방송 제작의 주역이 됨.
∙ 국영TV가 공무원 중심 조직으로 재편되면서 공채는 곧 사라졌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프로듀서가 방송의 책임이며, 창의적 직업이라는 강한 자긍심과
직업 정체성”을 교육받았다는 것임. 최창봉은 국영TV 공채1기들에게 프로듀서는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정신을 주입시켰고 이들은 자신의 일에
“상당히 긍지를 느끼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기억함(강명구, 백미숙, 『해방 이후 한국 방송의 형성에 관한 구술자료 2』, 2008, p. 217).
TBC 버라이어티쇼 <쇼쇼쇼>의 기획연출자로서 황정태
∙ 1964.10. TBC TV로 이동, 개국준비실무책임자이자 삼성 이병철 회장의 사위인 김규의 스카우트 제의를 최종 수락하고 이적함. 김규는 KBS 서울텔레비전
방송국 제작과장으로 재직한 바 있고, 라디오서울(TBC 라디오 전신) 준비를 위해 1963년에 이동, DTV(TBC TV 전신) 개국 당시 방송부 부장을 담당함.
∙ 1964.12.7. TBC TV 서울국 개국, 1964.12.12. TV부산국 개국, 1964.12.12 TBC <쇼쇼쇼> 첫 방송, 1980.11. TBC에서 총 786회 방영. 1980.12~1983.7.17.
언론통폐합으로 방송국이 통합된 후, KBS 2TV에서 913회로 종영. 황정태는 이미 포맷이 준비되고 편성이 확정된 <쇼쇼쇼>의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 <쇼쇼쇼>는
개국 축하 버라이어티쇼로 시작해 TBC TV가 1980년 11월 30일 폐국, 고별 방송을 하는 시기까지 계속된 프로그램으로서 구술자는 편성국장으로 승진(1976.9)
하기 직전까지 직접 기획, 연출을 담당함.
∙ 1969.11.1. TBC 운현궁 제3스튜디오가 준공됨으로서 <쇼쇼쇼>를 연출할 수 있는 150여 평 규모의 스튜디오가 확보됨, 운현궁 제3스튜디오는 대지 180평, 연건평
610평, 지상2층, 지하 2층 규모. 한국 최초 이원방송 실시. 메머드 스튜디오와 새로 도입한 기자재는 프로그램 제작의 일대 전기를 만듦. 카메라 3대, 카메라크레인
1대, 암펙스녹화기 2대 등 새 기재 설치, 본사에도 암펙스녹화기, 시네코더 등 보강, 한국 최초로 슬로모션 녹화기 도입. 이로서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녹화하여
제작하는 전통적 버라이어티쇼 장르의 형식과 내용이 진화되기 시작함.
∙ 1970. 9~11월에는 일본 민방 NTV에서 방송연수를 하고, 이듬해 1971. 8~11월 동안은 영국 외무성 초청으로 BBC에서 연수를 하며 영국방송을 경험함.
∙ 1975.1.25. <쇼쇼쇼> 500회를 방영함.
∙ TV쇼는 1976.2.5부터 시작된 대마초 관련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 조처로 출연자 부족을 겪으며 프로그램 제작에 큰 영향을 받음. 문공부 협조 요청에 따라 방송윤리
위원회 긴급조치 규제. 공보처 통보 54명 연예인 명단. 훈방조치 10명도 3개월간 방송 활동 중단(김추자,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신중현 구속 중, 김정호, 김세환은
활동 정지, 불구속기소는 이상한, 이상해, 장현. 훈방은 정훈희, 이수미, 임희숙, 임창제 등. 일체의 방송 활동 금지, 1976.01.31. <경향신문> 8면). 정부는 1979.12.26
에서야 대마초 관련 연예인 활동을 전면 허용.
∙ 1976. 1월 황정태는 “새로운 쇼를 요청하는 사회 분기에 맞출 겸 우선 쇼의 얼굴인 사회자를 교체”한다고 하며, 11년간 사회를 맡았던 곽규석 대신 위키리(이한필),
정윤희를 새로운 진행자로 받아들였고, 1976년 4월에는 여성 진행자를 정소녀로 교체함. 1977. 4월에는 남성 진행자도 바뀌어 허참, 정소녀 커플로 안착함.
∙ 1976. 9월 편성국장으로 승진하며 회사의 요구에 따라 <쇼쇼쇼> 제작에서 손을 떼었으나 경영진의 요청으로 1978.12.9. <쇼쇼쇼> 700회 특집에는 직접 제작에 참여.
700회 특집은 TV쇼프로그램 최초로 유럽, 미국 등지에서 제작됨.
∙ 1980.11.30. 언론강제통폐합으로 TBC는 고별방송을 하고 폐국. 이 당시 이사대우 제작국장을 담당하던 구술자는 KBS로 가기를 거부하고 신세계백화점 영업이사로서
홍보 영역의 일을 담당함.
∙ 1983. 중앙일보 문화사업 담당 이사, 1988. 제일기획에서 상임고문의 일을 하며 방송 현업에서 멀어져 가던 구술자는 1993. KBS제작단 상임감사 직무를 시작으로
방송 유관 일을 다시 시작.
∙ 1998년부터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을 연임한 후 구술자는 2000년에 제5대 KBS이사회 이사로 선임되어 최고의사결정 기구에 참여함.
구술자 기증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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