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출생년도
- 1933년
- 활동분야
- 대중예술 - 대중예술 - 가수
- 채록연구자
- 이준희
- 시리즈번호
- 307
구술자료
주요 약력
1. 인적사항
∙ 성 명 | 김용만(金用萬, Kim Yong Man)
∙ 생 년 월 일 | 1933년 10월 27일 (호적에는 1935년으로 기재)
2. 수련과정 (연도 순)
∙ 1946년 동대문국민학교 졸업
3. 일반 / 수상경력
1) 일반
∙ 1966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위원 선출
2) 수상
∙ 1958 잡지 아리랑 주최 인기가수추천대회 6위 선정
∙ 1966 한국연예협회 주최 제1회 전국경음악대회 10대 가수 선정
∙ 1967 제3회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상 후보 선정
∙ 2000 제7회 대한민국연예예술대상 국무총리 표창 수상
4. 활동경력
1) 주요 작품 목록(노래)
∙ 1954 <남원의 애수>
∙ 1956 <효녀 심청>, <봉이 김선달>, <삼국지>
∙ 1957 <청산유수>, <두만강아 전해 다오>
∙ 1958 <명동 블루스>, <오늘은 월급날>
∙ 1959 <삼등 인생>, <청춘 보트>, <한양 가는 방자>
∙ 1960 <생일 없는 소년>, <청춘은 꿈>, <정열의 차차차>, <월급날 맘보>
∙ 1961 <오늘밤은 차차차>
∙ 1963 <김군 백군>, <왈순 아지매>
∙ 1966 <회전의자>
∙ 1975 <나비야 청산 가자>
2) 주요 작품 목록(작곡 및 작사)
∙ 1962 <잘 있거라 부산항>, <못난 내 청춘>, <마도로스 도돔바>, <재건호는 달린다>, <항구의 0번지>
∙ 1964 <마도로스 센타>, <최종 열차>
∙ 1983 <행운을 드립니다>
3) 주요 작품 목록(영화 음악 및 출연)
∙ 1966 <꿩 먹고 알 먹고>(출연)
∙ 1967 <월하의 공동묘지>
∙ 1968 <가요 반세기>(출연), <남>
∙ 1969 <오부자>, <북경 열차>
4) 구술자 관련 주요 예술사적 사건
* 1950년대 대중가요 SP음반 녹음
광복 이후 1947년이 되어서야 겨우 시작된 ‘국산 음반’의 역사는 6·25전쟁의 발발로 다시 어려움을 겪다가 1954~55년 이후 비로소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이른바 6대 음반회사로 꼽혔던 곳이 유니버살, 오아시스, 도미도, 미도파, 신신, 킹스타 등인데, 구술자는 6대 음반회사에서 모두 SP음반을 낸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이다.
뿐만 아니라 데뷔곡을 발표한 아리랑레코드를 비롯해 수많은 군소 음반회사에서도 적지 않은 음반을 발표했으므로, 1950년대 SP음반 제작 환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세밀한
증언을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1950년대 대중음악 공연 내용의 변화와 극장 쇼의 성장
1950년대 중반까지 극장 무대의 패자로 꼽혔던 악극이 빠른 속도로 쇠락하면서 대중음악 공연은 두 가지 갈래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하나는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8군쇼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무대’이다. 구술자의 활동이 8군쇼와는 큰 관련이 없었으나, 일반 무대에서는 독특한 스타일로 큰 인기를
누린 편이었다. 1950년대 말을 거쳐 1960년대 내내 중요한 대중음악 유통 경로가 되었던 극장 쇼의 세부 내용 파악은 통상 대중가요 음반이나 작품 중심으로 기술,
재구성되어 온 대중음악 역사 영역 확대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 1960년 전후 SP음반에서 LP음반으로 전환
1960년 전후를 경계로 음반의 주도권은 SP에서 LP로 바뀌게 된다. 음반 형태의 변화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인물 및 양식, 여타 매체의 변화와 맞물려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큰 전환기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의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가수, 작가들이 대거 인기 하락과 활동 축소를 겪기도 했는데, 구술자는 그러한 전환기에 오히려
활동 영역을 작곡이나 영화 음악 등으로 넓히면서 여전히 영향력 있는 대중음악가로 성장하기도 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아우르는 활동만으로도 구술자의 위상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 만요와 신민요 흐름의 계승과 변화
분류 층위는 다소 다르지만, 1930년대 대중가요에서 만요와 신민요는 주요하게 언급되어 온 장르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는 만요라는 명칭이 사실상 사라졌고, 신민요는 이후로도
한동안 존속하기는 했지만 내용상 상당한 변화와 함께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구술자는 당대 만요 가수 중 일인자로 꼽혔던 것은 물론, 흔치 않은 남성 신민요 가수로서도 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나아가 작곡과 음반 제작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힐 때에도 만요, 신민요는 구술자 음악 활동에서 빠지지 않는 분야였다. 대중음악가로서는 드물게 나름의
민요관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온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술자 기증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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