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채록

김지하 Kim ji ha, 金芝河, 김영일, 金英一

기본정보

출생년도
1941년
활동분야
문학 - 문학 - 시
채록연구자
홍용희
시리즈번호
299

구술자료


주요 약력

 1. 인적사항 

 ∙ 성               명 | 김지하 (金芝河 Kim ji ha/ 본명 : 金英一) 

 ∙ 생 년 월 일 | 1941년 2월 4일 


 2. 수련과정 

 ∙ 1953 산정초등학교 졸업 

 ∙ 1953 목포 중학교 입학 

 ∙ 1954 원주 중학교 2학년 전학 

 ∙ 1956 중동고등학교 입학 

 ∙ 1959 중동고등학교 졸업 

 ∙ 195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미학과 입학 

 ∙ 1966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 1993 서강대학교 명예박사  

 ∙ 2006 제주대학교 명예박사 


 3. 일반 / 수상경력 

 1) 일반 

 ∙ 1997.03 신문명정책연구원 고문 

 ∙ 1998.10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 1999.02 명지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 1999.06 민족문화시민운동단체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 임시대표 

 ∙ 1999.08 초대 율려학회 회장 

 ∙ 2003.12 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 2003 공동추진위원장 

 ∙ 2004.07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 2005.08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석좌교수 

 ∙ 2006.03 명지대학교 교양학부 석좌교수 

 ∙ 2007.09 동국대학교 생태환경연구센터 석좌교수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 2008.03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 

 ∙ 2013.09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 


 2) 수상  

 ∙ 1975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수상  

 ∙ 1981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상 

 ∙ 1981 부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 1993 제 5회 이산문학상 

 ∙ 2002 제 14회 정지용문학상 

 ∙ 2002 제 17회 만해문학상 

 ∙ 2002 제 10회 대산문학상  

 ∙ 2003 제 11회 공초문학상 

 ∙ 2005 제 10회 시와시학상 

 ∙ 2006 제 10회 만해대상 

 ∙ 2010 영랑시문학상  

 ∙ 2011 제 2회 민세상 


 4. 구술자 저작물 

 시집 

 ∙ 1970 『황토』,한얼문고 

 ∙ 1982 『타는 목마름으로』, 창작과비평사 

 ∙ 1982 『대설 남(南)1, 2』, 창작과비평사 

 ∙ 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동광출판사 

 ∙ 1985 『대설 남(南) 3』, 창작과비평사 

 ∙ 1986 『애린 1‧2』, 실천문학사 

 ∙ 1986 『검은 산 하얀 방』, 분도출판사 

 ∙ 1988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동광출판사 

 ∙ 1988 『나의 어머니』, 자유문학사 

 ∙ 1989 『별밭을 우러르며』, 동광출판사 

 ∙ 1994 『중심의 괴로움』, 동광출판사 

 ∙ 1994 『대설 남(南)4,5』, 솔 

 ∙ 1999 『꽃과 그늘』, 실천문학사 

 ∙ 2002 『화개』, 실천문학 

 ∙ 2004 『유목과 은둔』, 창작과비평 

 ∙ 2006 『비단길』, 시학사 

 ∙ 2006 『새벽강』, 시학사 

 ∙ 2009 『못난 시들』, 자음과 모음 

 ∙ 2010 『시 삼백 1, 2, 3』, 자음과모음 

 ∙ 2012 『시김새 1, 2』, 신생  

 ∙ 2018 『흰그늘』, 작가 


 산문집 

 ∙ 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동광출판사 

 ∙ 1984 『산문집 ‘밥’』 (1984), 분도출판사 

 ∙ 1985 『남녘땅 뱃노래』, 두레출판사 

 ∙ 1987 『살림』, 동광출판사 

 ∙ 1992 『모로 누운 돌부처』, 나남 

 ∙ 1993 『옹치격』, 솔 

 ∙ 1994 『동학이야기』, 솔 

 ∙ 1995 『틈』, 솔 

 ∙ 1995 『님』, 솔 

 ∙ 1996 『생명과 자치』, 솔 

 ∙ 1999 『율려란 무엇인가』, 한문화 

 ∙ 1999 『사상기행』1, 2, 실천문학사 

 ∙ 1999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실천문학사 

 ∙ 2000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두레 

 ∙ 2001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 학고재 

 ∙ 2003 『흰 그늘의 길 1, 2, 3』, 학고재 

 ∙ 2003 『생명학 1, 2』, 화남 

 ∙ 2003 『절, 그 언저리』, 창비 

 ∙ 2003 『김지하의 화두』, 화남  

 ∙ 2004 『탈춤의 민족미학』, 실천문학사 

 ∙ 2005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실천문학사 

 ∙ 2005 『생명과 평화의 길』, 문학과지성사 

 ∙ 2007 『김지하의 예감』, 이룸  

 ∙ 2009 『디지털 생태학』, 이룸 

 ∙ 2009 『촛불 횃불 숯불』, 이룸 

 ∙ 2009 『새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이룸 

 ∙ 2009 『방콕의 네트워크』, 이룸 

 ∙ 2010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천년의시작 

 ∙ 2010 『춤추는 도깨비』, 자음과모음 

 ∙ 2013 『초미』, 다락방 

 ∙ 2013 『수왕사』, 올리브멤앤비 

 ∙ 2013 『아우라지미학의 길』, 다락방 

 ∙ 2018 『우주 생명학』, 작가 


 5. 구술자 관련 예술사적 사건  

 ∙ 1963년 우리문화연구회 창립  

   : 우리문화연구회는 1963년 조동일, 심우성 등과 함께 주도적으로 창립한 서울대학교 학생 문화운동 단체이다. 주로 민요, 판소리, 탈춤, 무속 등의 전통민예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이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주체성 회복에 활로를 개척하는 데 기여한다. 그의 창작 판소리 『오적』등의 지적 토양이 우리문화연구회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 1969년 <<시인>>지에 「서울길」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등단한다. 

 ∙ 1970년 『오적』 필화사건  

   : 1970년 <<사상계>> 5월호에 당시 권력형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적으로 노래한 담시『오적』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다시 같은 해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에 전문이 게재된다.  

     이 작품이 대중적 주목을 받게 되자 박정희 정권은 담시 『오적』에 대해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것이라고 하여 반공법 위반의 죄목으로 김지하를 투옥한다.  

     그리고 <<사상계>>의 발행인과 <<민주전선>>의 편집인을 구속하고 각각 판매금지와 압수처분을 한다.   

 ∙ 1970년 11월 <항일민족학교>에서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의 강연을 통해 민족문학의 민중적 양식화에 대한 논리를 제시한다.  

 ∙ 1971년 천주교 원주교구 농촌협동운동 기획위원 취임: 원주교구에서 지학순 주교와 함께 민족적 주체성 회복, 민주화 운동을 도모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된다.    

 ∙ 1972년 카톨릭계 종합지 <<창조>>지에 권력의 횡포와 민심을 다룬 담시 「비어」를 발표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이 담시가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것>이라고 규정하여  

   잡지를 판매 금지시킨다. 김지하는 기소는 되지 않았으나 마산국립결핵요양원에 강제 연금된다.    

 ∙ 1974년 민청학련 사건 관련 사형 선고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事件), 줄여서 민청학련 사건(民靑學聯事件)은 1974년 4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시국 사건을 말한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의 관련자 180여 명이 불온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2009년 9월 재판부는 민청학련 사건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모두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력혁명기도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1974년 4월 김지하를 그 주동자로 체포하여 7월 13일에 비상보통군법회의로부터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이후 7월 20일에 국방부 장관 서종철의 이름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킨다.  

     사형 언도가 있었던 7월 10일을 전후해서 일본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김지하 석방운동이 활발하게 확산된다.   

     일본에서 <김지하를 돕기 위한 모임>이 발족되고 교포작가  김석범, 이회성, 김시종, 일본작가 眞斷伸彦, 南坊義道 등이 7월 16일에 동경의 수끼야바시 공원에서 1차로 단식 투쟁을 한다.  

     그리고 이어서 27일에 다시 쓰루미 슌스께, 김달수 등이 2차 단식 투쟁을 통해 김지하 구원을 위한 운동에 들어간다.  

     이를 계기로 김지하 석방 운동은 프랑스의 샤르트르, 보봐르 부부, 미국의 하워드 진, 노옴 촘스키 등이 참가하면서 세계적 관심사로 확산된다.     

 ∙ 1975년 2월 25,26,27일에 걸쳐 동아일보에 「고행-1974」발표하여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린다. 김지하는 이 글로 인해 3월 14일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를 통해  

   결과적으로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된다.  

 ∙ 1975년 6월 29일 <아시아 · 아프리카 작가회의> 는 <로터스상 특별상>을 수여하는 한편, <김지하는 현재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의 다른 정치범들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다>라는 석방요청서를 박정희 정권에 발송한다.  

 ∙ 1976년 반공법으로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을 구형 받게 된다.  

   1980년 12월 11일 전두환 정권은 <새시대 민주복지국가 건설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형 집행 정지로 석방한다고 발표한다.   

 ∙ 1982년 대설 「남」을 간행하면서 수운, 해월, 강증산 등의 전통적인 민족민중사상을 생명사상으로 재해석하고 정립하는 양상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 1988년 ‘한살림모임’을 장일순, 박재일, 최혜성 등과 함께 주도적으로 창설하고 그 이듬해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살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한 운동을 추구한다.     

 ∙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생명사상의 미학적 표상에 해당하는 ‘흰- 그늘’의 미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