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행본
『꽃과 소녀(少女)』, 『螢雪文化』, 1953.
『꽃과 사랑』, 『新太陽社出版局』, 1959.
『꽃 : 꽃과 사랑의 전설,신화(傳說,神話)』, 『悅話堂』, 1978.
『동물적 인간론(動物的 人間論)』, 『샘터』, 1978.
2.시론
『춤에 부쳐』, 『춤』, 1966년 7월호.
『근대무용 쉰돌』, 『춤』, 1976년 3월호.
『무용의 위기』, 『춤』, 1976년 5월호.
『권위와 도전』, 『춤』, 1976년 5월호.
『관객과 손님』, 『춤』, 1976년 6월호.
『거인의 퇴장 - 조택원 옹의 투병에 부쳐서』, 『춤』, 1976년 7월호.
『승복할 줄 아는 자존심을 - 무용콩쿠르에 참가하는 젊은 무용가들에게』,
『춤』, 1976년 8월호
『춤 현대화에 앞서야 할 일들』, 『춤』, 1976년 9월호.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 서울에 온 마고트 폰테인 여사에게 붙여서』, 『춤』, 1978년 6월호.
『무용교수의 양식과 무식 - 김백봉 씨의 <고려무> 발언에 관하여』, 『춤』, 1979년 4월호.
『늦지 않았다. 교수의 양식으로 돌아가라』, 『춤』, 1979년 5월호.
3)기타
「무상(無想)」, 『춤』, 1978년 6월호.
「조동화 <춤> 발행인 피소」, 『춤』, 1979년 5월호.
「문예진훙원 무용심의위원 구성 - 김정욱, 안제승, 육완순, 임성남」, 『춤』,
1981년 7월호.
「조동화 씨 평론상 받아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춤』, 1981년 12월호.
「조동화 씨, 그림동화책 <돌제비> 출간」, 『춤』, 1982년 4월호.
「조동화 씨 모친상」, 『춤』, 1982년 9월호.
「이순열, 조동화 씨 무용계 시찰차 출국 – 일본과 프람스, 서독 등지」, 『춤』,
1983년 2월호.
「외국의 무용사회도 우리와 비슷해」, 『춤』, 1983년 12월호.
「조동화, 이순열 씨 유니마 세미나에 참석하고 귀국 – 일본 유니마 동경 한국지부」, 『춤』,
1984년 1월호.
「힘겨운 한달 한달이 언젠가 벌써」, 『춤』, 1984년 6월호.
「조동화 씨 국제 꼭두극연맹 총회에 참가차 동독으로 – 동독 드레스덴에서 개최」, 『춤』,
1984년 9월호.
「제9회 <무용대상> 임성남, 조동화 씨 수상 – 한국무용협회」, 『춤』, 1988년 12월호.
「조동화 씨 딸 유미 양 박태식 군과 결혼」, 『춤』, 1989년 8월호.
「조동화 씨 장남 유현 군과 조은경 양 결혼」, 『춤』, 1990년 10월호
「조동화 씨 <문화훈장> 받아 - <문화의 날> 기념식장에서」, 『춤』, 1990년 11월호.
「6・25 전쟁 중에 만들어진 ‘한국무용단’」, 『춤』, 1991년 12월호.
「‘조택원 춤비’ 보고 모임 가져 – 동숭동 밀다원에서, 강선영, 조동화, 김태원,
김경애 씨」, 『춤』, 1995년 10월호.
「경과보고」, 『춤』, 1996년 4월호.
「거인의 퇴장 – 조택원 옹의 투병에 부쳐서」, 『춤』, 1996년 4월호.
「무용용어 통일위(統一委)와 조택원 선생」, 『춤』, 1997년 2월호.
「99 특별공로 예술인 선정에 춤 발행인 조동화 –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춤』,
200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