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殘像)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어떠한 상(像)을 보고 난 후에도 그 자극이 지속되어 망막 상에 형상이 잔류하는 현상이고, 둘째는 과거로부터의 지워지지 않는 모습이다. 잔상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위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눈을 감고 이전에 보았던 빛으로부터의 형상이 망막에 떠다니는 것을 보기를 즐겼다. 그 형상들은 감은 눈 속에서 흔들리고 부유(浮遊)하며 확대, 축소되고 변색되었고, 그러는 중에 다시 감은 눈을 뜨고 실제형상을 다시 바라볼 때 실체와 허상이 합쳐지는 순간, 그것이 시각적인 경험이 아닌 음악적인 경험으로 다가오곤 하였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과 과거에 바라보았던 것, 실체와 허상, 기억과 실제의 혼란이 가져오는 감각적인 경험을 음악화 하려는 시도로서 이 작품이 구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