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오케스트라를 위한 abyss(심연)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분명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이었던 이 문구를 우연히 다시 마주한 순간, 마치 이 문구가 나의 오랜 물음에 답을 주는 듯하였다. 작곡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하여 많은 물음들을 품고 있었던 시기에 다시 마주한 이 문구는 아마 작곡이라는 행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하고, 한 작곡가의 영혼과 사상들이 악보에 구체화되어 옮겨지기 까지, 작곡가들은 바닥이 없는 깊은 곳으로 가라앉음으로써 자신을 표현할 동력을 얻는 것이 아닐까.
이 곡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과는 별개로 문구에서 받은 영향을 음악으로 풀어낸 곡으로 심연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심연이 아주 서서히 우리를 잠식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를 잠식하는 것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과 그 어두움이지만, 결국 심연을 마주하기로 선택한 것은, 그 심연을 응시하기로 결정한 것 또한 우리였음을 표현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