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千의 靈前에…>라는 부제가 적힌 이 곡은 해금과 타악기로 연주된다. 소년으로서 6.25 전쟁 피난길에서 목격한 끔찍한 죽음을 비롯하여 젊은 시절에 이미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의 죽음을 많이 체험한 작곡가이기에, 죽음이라는 테마는 선생님의 음악세계에 일찍부터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1975년 가야금 독주를 위한 <명>을 시작으로 1987년 플루트, 클라리넷, 기타, 비올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명>, 그리고 해금과 타악기를 위한 <명>까지… 같은 제목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수록된 해금을 위한 <명>은 단어가 의미하는 죽음의 세계나 죽음 자체를 묘사했다기보다는 곡을 들어 보면 오히려 살아있는 자의 소리를 듣는, 삶의 노래로 여겨진다. 처음 시작되는 날카로운 해금의 소리는 죽음을 접한 산 사람의 놀라움과 충격인 듯 다가오지만, 이어지는 소리를 계속 따라가 보면 울부짖는 비통합은 아니다. 슬픔과 아쉬움 속에서도 망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결국은 편히 저쪽 세상으로 보내주는... 정성스러운 혹은 승화된 이별 의식 같은 절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죽음의 세계는 어쩌면 풀리지 않는 삶의 복잡하고 복잡한 모든 문제를 더 이상 끌어안고 갈 필요가 없는, 평온함이 가득한 곳일지도 모른다. 격정적인 해금 소리에도, 천지를 진동하는 큰 북소리에도 파묻히지 않고 아주 여리지만 맑고 투명한 경쇠 소리는 영혼의 평화로운 세계로의 입성을 말하는 듯, 떠나는 자와 남아있는 자 모두를 조용히 안식케 한다.
* 2010년 녹음 버전에는 연주자 스스로 타악 부분을 기타로 바꾸어 연주함.
* 참고로 성천(成千)은 백병동 선생님의 동문이었던 국악 작곡가 이성천 선생님을 가리킴.
(백병동 · 이건용의 해금과 기타를 위한 작품집, 후조(後彫)(음반) - 작품 해설: 박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