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를 체험한 우리 세대의 사명으로'
특정 인물에 대해서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우선 상상력에 한계가 있고 지금처럼 불과 30~40년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인 경우 표현방법에도 제약이 다른다. 유럽에서는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는 오페라가 무척 많고,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어 갈채를 받는 명작 또한 많다. 대부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역사적으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재창조됨으로써 오페라 작품으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경우는 이 시대의 공과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이므로, 이 작품은 순수한 작곡가의 위치에서의 접근이 필요했다. 이왕 '박정희 오페라'가 만들어져야 한다면 이 시대를 체험한 우리 세대의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역사적인 사건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가능한 객관적으로 순수한 오페라로서 그려내려고 노력하였다. 따라서 수시로 대본의 수정작업을 거쳤고 거의 반년동안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여 작품에 매달렸다.
작곡 양식은 특별히 정하지 않고 조성이나 무조성이나 그때 그때 장면의 분위기에 맞추어 자유롭게 선택하였다. 전반적으로는 일단 조성을 견지하여 되도록 로맨틱 오페라의 스타일로 되돌아가 청중에게 감상의 부담이 안되도록 하였다.
세대가 바뀐 뒤 언젠가는 '박정희'도 역사에 각인된 전설적인 내용의 오페라 작품으로 승화될 날이 있겠지만 이에 대한 중간 단계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잇다면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람으로 삼을까 한다.
(창작 오페라 '눈물 많은 초인' 프로그램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