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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 가야금과 관현악의 긴밀한 대화와 대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앙상블의 과정을 중심적으로 감상해주세요
Focus on the ensemble of sanjo gayageum and orchestral music achieved through intimate dialogues and conflicts.
산조12현의 표정을 현대적 언어로 읽으려는 시도를 높이 평가합니다. (류형선)
<산조가야금 협주곡 '불사조'(글 : 음악평론가 송현민)>
25현이 아닌 12현 가야금
오늘날에 작곡되는 ‘가야금 협주곡’은 25현 가야금을 위한 작품들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25현 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18년에 세상에 나온 <불사조>는 열두 줄 산조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이다.
“오늘날 산조가야금을 위한 협주곡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에 나온 수많은 작품들도 25현 가야금협주곡에 밀려 잘 연주되지도 않고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악기가 지닌 한계 때문이죠.” <불사조>는 장민석이 말하는 ‘한계’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이다. 이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는 그의 지음 이승호의 도움이 컸다. 장민석은 그와 함께 앙상블 본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앙상블 명칭인 ‘본’은 ‘뿌리’를 뜻하는 한자어.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벗입니다. 그냥 3년이 아니라 하루의 8~10시간을 함께 한 3년입니다. 저를 키운 것은 앙상블 본의 연주자들과 동고동락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이승호만의 기법과 손맛을 많이 녹여 넣었습니다. 따라서 유행하는 악기(25현 가야금)보다는 사람(이승호)을 보고 쓴 곡입니다.” <불사조>는 장민석의 두 번째 관현악 작품이다. 2016년에 처음으로 도전해 본 <침묵하는 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불사조라는 자화상
“작곡할 때 하나의 믿음이 있습니다. 특정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에요. 제가 생각하는 음악은 1차원적 예술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통해 ‘빠르다’ ‘어둡다’ ‘신비롭다’ 등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 뿐, 소리가 어떤 형상이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묘사한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목은 ‘불사조’이지만, 이 곡을 들을 때 굳이 그것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불사 조란 무엇일까. 그것은 작곡가가 품어야 할 예술혼을 상징할 뿐이다. “똑같은 작품을 만들 거라면 굳이 밤을 샐 필요는 없다”라는 그의 신조가 돋보인다. 그래서, 이 곡은 한마디로 장민석의 자화 상이다.
안족에 숨겨진 기법
곡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다섯 박의 엇모리, 올림채 등의 장단이 중요한 얼개를 이룬다. 후반부는 도살풀이 장단이 지속된다. 이 곡의 첫 인상은 나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한 음도 버리지 않고 소리 다발로 엮는 솜씨가 놀라 웠다.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지 않은 깔끔함. 소리들이 한데 합쳐지면서도 뭉개지지도 않았 으며, 폭발을 노린듯한 거대한 음형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대한 그림 안에는 작곡가가 고안한 디테일한 면들도 살아 숨 쉬고 있었는데, 이는 가야금이 잘 보여준다. 12현 가야금은 25현 가야금보다 음역이 좁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을 장민석은 흥미 롭게 뚫고 나간다. 대표적인 경우가 안족을 독특히 사용하는 것이다.
“열두 줄로 표현할 수 없는 다른 음을 끄집어내려면 안족을 몇 번이고 내리고 올려야 합니다. 이 곡에서도 스무 번 이상 안족을 조정합니다. 그러던 중에 생각한 것이 하나의 현을 뜯어 소리를 낸 다음, 재빨리 안족을 움직여 소리를 끌어올리는 추성과 같은 효과를 나게 했지요. 조율을 위해 음악을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연주’와 ‘조율’이 동시에 진행되게 했습니다.”
이를 연극 무대에 비유한다면 막과 막 사이에 스태프들이 무대를 전환하는 준비 과정을 작품 의 일부로 녹여 넣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불사조=자화상 이처럼 장민석은 한계를 즐긴다. 아니, 어쩌면 한계란 그의 작곡이 시작되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불사조란 새는 잘 어울린다. 불사조도 죽음이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생명체가 아닌가. 그가 앞으로 작곡하고 싶은 장르는 이번과 같이 협주곡이다. “기법적으로 뛰어난 곡보다는, 이번 연주를 함께 하는 이승호처럼 악기의 습성과 닮은 연주자, 혹은 연주자만의 개성을 악기에 잘 녹여 넣을 줄 아는 연주자들을 위해 곡을 짓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놓이는 위치는 정확히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앞으로 만날 ‘장민석표 협주곡’들이 기대된다.